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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소설과 수필

순례 주택(유은실)

by 소랑나무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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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유은실)

 

유은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필두로, 「일수의 탄생」, 「내 머리에 햇살 냄새」 등 여러 작품의 동화를 썼으며, 청소년 소설 「현두리」, 「2미터 그리고 48시간」, 그림책 「나의 독산동」, 「심청전」, 「송아지똥」 등에 글을 씀. 「만국기 소년」으로 한국어린이도서상을, 「변두리」로 권정생 문학상을 받았다. 「멀쩡한 이유정」이 2010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어너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순례 주택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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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 리뷰(?)를 올리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떤 묵직한 울림이 있거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거나, 교양서적류의 책이 아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마치 시트콤의 한 시즌을 본 것처럼 웃다가 짠하다가 고소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아마 작년에 베스트셀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비슷한 느낌의 「불편한 편의점」, 「아버지의 해방일지」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다. 


<순례 주택>

원래도 순례(順禮)였지만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올 살고 싶어 순례(巡禮)로 개명한 순례씨. 대기 삼 년은 기본인 이 건물의 건물주이다. 세신사 시절 벌었던 돈으로 일명 때탑을 사게 되었고 근처에 지하철역이 생기며 배로 뛴 시세와 도로확장에 따른 보상금으로 새 건물을 짓게 되었는데 시세가 아닌 필요한 만큼만 임대료를 받으니 인기가 많다.

필로티 구조의 건물은 대략 이렇다. 읽다 보면 저절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지만...그림에 소질이 워낙에 없어서... 나중에 이 소설의 주요 인물 '오수림' 가족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1호로 들어가게 된다.

 

<순례 주택(빌라촌) vs 원더 그랜디움(아파트)>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이 관리가 잘 안 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부모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

모자이크와 함께 음성 변조로 뉴스 인터뷰를 했지만 누가 봐도 오수림 엄마다. 인터뷰 짤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원더 그랜디움 망신시키지 마세요", "시원한 말씀. 빌라촌 애들이랑 섞이면 찝찝". 이런 양상은 불행히 지금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고가 아파트, 고급 외제차, 고가 의류 브랜드, 고가 지역 등 이러한 것들은 어느새 국경(소설에서 이렇게 표현한다)을 긋게 되었고 선망하고 자랑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나는 자유로운가. 인간의 욕구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과연 이러한 것들이 없어질 수 있을까. 물질적인 것이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도 그렇지만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에 더 씁쓸하다. 순례 씨처럼 인생의 순례자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닐 것이다. 순례 주택은 차치하고 빌라촌의 다른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원더 그랜디움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릴 수 있을까? 물론 인생의 순례자가 되는 게 이상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그렇게 되고 싶다.

 

<오수림과 가족>

1군들과 2군 후보. 15년째 전임 교수를 꿈꾸는 아빠(학벌로 국경을 나눈다), 오미림(고1)에게 지극정성이며 늘 빌라촌을 무시하는 엄마, 원더 그랜디움의 드라이 향기를 그리워하고 BMW 미니를 꿈꾸는 이기적인 오미림. 1군과 달리 오수림은 거의 내놓은 자식처럼 순례 주택에 따로 살게 된다. 1군들의 공통점은 인생의 순례자가 아닌 관광객(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요구하고,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김)이라는 점이다. 외할아버지 집인 원더 그랜디움에 살다가 쫄딱 망해 그렇게 무시하던 거북동 빌라촌에 입성하여 살게 되는 과정이 너무 고소하고 통쾌하다. 재밌다. 순례 주택에 살면서 두 달이 지나도 보증금은 갚지 않고 본인 카드값, 오미림 학원비에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 재밌고 황당하면서도 주변에 꼭 있을 법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역시나... 그래도 순례 씨와 더불어 오수림, 순례 주택 사람들로 인해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엄마 아빠는 결혼 십칠 년 만에 첫 부부 싸움을 했다.타인이 아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 집의 낯선 불화가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작가의 말대로 누가 누가 더 어린가 내기하는 세상인 것 같다. 내가 속한 사회 집단에서도 사람들이 가끔씩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의 행동들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물론 문득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가정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인생의 순례자가 되려고 하는 나를 보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ㅋㅋ

 

'기성세대가 망가뜨린 지구별에서 함께 어려움을 겪는 어린 순례자들에게 미안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맞다. 기성세대가 망가뜨리고 있는 거 맞다. 고쳐야 하는 것도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본다. 기성세대도 어린 순례자였을 것이다. 그럼 그 어린 순례자는 누가? 무엇 때문에? 왜? 지구별을 망가뜨린 기성세대가 된 것일까? <어린 순례자 → 기성세대 →어린 순례자 → 기성세대> 이 무한 루프의 시발점은 무엇일까? 아주 먼 옛날에도 지구별을 망가뜨린 기성세대가 있었을 것이고, 어린 순례자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욕구와 본성까지 들여다봐야 하나. 우선 그냥 편하게 읽고 즐기자!!!! 

 

끝으로 순례씨가 자신의 인생을 잘 표현한 시로 수림이에게 이야기한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의 일부를 소개하며 마친다.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 중략-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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