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피츠제럴드)- THE GREAT GATSBY(F. SCOTT FITZERALD)
F. 스콧 피츠 제럴드(Francis Scott Key Fizgerald, 1896-1940): Nathaniel Hawthorne, Herman Melville이 몸통을 만들었다면 O. Henry와 Edgar Allan Poe로 날개를 달고 본격적인 비상을 시작했던 미국 소설의 역사에 스콧 피츠제럴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172cm의 키와 65kg도 되지 않는 체격, 금발머리와 옥수수 수염을 가진 이 청년 작가에게 보내는 미국인들의 찬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식을 줄 모른다. 작품성뿐만 아니라 스타성까지 겸비해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피츠제럴드는 45년의 삶 동안 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는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은 가장 미국적인 작가이다. - 해설 중 -

문득 책장을 정리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책 위에 먼지가 꽤나 쌓인 걸 보니 읽은지 한참이나 된 것 같다. 한 15년 정도?
오랜만에 읽은 이 소설의 느낌을 정리하자면,
1. 1920년대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똑같다.(시간적, 공간적인 배경만 제외하면 지금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도 될 정도로 이질감이 없다)
2. 문체가 화려하다. 원래 배경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상상해야만 하는 의무감(?)이 들 정도이다.
3. 사랑에 있어서 개츠비는 위대하다.
4. 미국적인 작가의 가장 미국적 소설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서부 사람들의 동부 생활 적응기)
5. 공감이 가는 등장인물들의 향연(개츠비, 데이지, 닉 캐러웨이, 톰 뷰캐넌, 조던 베이커, 머틀과 윌슨 등)으로 즐거운 눈.
이 소설은 닉 캐러웨이의 회상으로 전개가 된다.
개츠비는 내가 서슴없이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개츠비는 결국 옳았다. 한동안 내가 인간의 일시적인 슬픔이나 단발적인 우쭐함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꿈이 지나간 자리에는 더러운 먼지만이 떠돌고 있었다.
닉은 본인 스스로 가장 정직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개츠비를 떠올린다. 대표적으로 경멸하는 것들은 속물성, 거짓, 집착 등인데 사실 이러한 것들은 개츠비를 죽게 만든 윌슨을 제외한(물론 내 생각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상류 사회를 향하는, 이스트에그를 향하는 동부를 향하는 모든 사람들 말이다. 사교계에 진출하기 위해, 상류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어찌 보면 현대인들 대부분은 닉이 경멸하는 속물성(내 생각엔 본인도 갖고 있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인스타그램 게시물만 봐도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아래처럼 1920년대 미국 사회를 종종 느낄 수 있다.
그들은 곧 식사가 끝나고 조금 후엔 저녁 시간도 지나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서부와는 뚜렷이 다른 점이다. 서부에서의 저녁시간은 실망스러운 예감들이 밀려오거나, 아니면 꽉 찬 긴장감으로 쫓기듯 지나가 버리고 만다.
"이 친구가 모든 것을 연구했어. 주도권을 가진 우리 인종이 조심하지 않으면 다른 인종의 손에 넘어간다는 거야." "때려 부숴야겠군요."
"그리고 문명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만들어냈지. 음 과학이나 예술, 그리고 모든 것들을 말이지. 알겠어?"
사실 유무와 상관없는 가십거리의 파괴적인 전파력. 듣는 순간 믿게 되거나 선입견이 생기게 만든다. 약혼을 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화 된 닉부터 어마어마한 재력을 바탕으로 이스트에그가 아닌 웨스트에그에 대저택을 마련한 개츠비의 과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소문의 이면에는 전달하는 사람이 부여하는 정당성이 있다. 앞으로 이런 소문을 들을 땐 전달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의도는 무엇인지, 본인에게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지.
"두 사람을 떼어놓는 건 사실 그의 부인이에요. 그녀는 가톨릭 신자인데요,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하지 않잖아요." 데이지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이 구체적인 거짓말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톰은 부인(데이지)이 보는 앞에서 머틀(윌슨의 부인)과 당당하게 바람을 핀다. 머틀은 데이지가 있는 집으로 당당하게 전화를 한다. 위에 저 말은 캐서린(머틀의 동생)이 톰과 머틀 둘 다 자기 배우자를 못 견뎌한다며 한 말이다. 훗날 캐서린은 자신의 형부 윌슨을 '비탄에 빠져 발작을 일으킨' 사람으로 격하시키는 데 일조한다. (나쁜..)
<개츠비를 위한 변명>
개츠비가 사랑하는 데이지를 다시 만나는 데 걸린 시간은 5년이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 건너편에 대저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밤마다 의미 없는 파티를 열고 재력가들과 다양한 유력가들을 초대하며 부와 사치의 끝판을 보여 준다. 심지어 오케스트라도 부른다. 그리고 파티를 즐기는 모두에게 개방한다. (초대를 받지 않고 그곳에 오는 사람이 더 많고, 상주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사랑하는 여자, 데이지를 향해 있다.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녀를 평생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사랑 아래에서 그의 부도덕한 행위는 모두 정당화된다.(예: 1919년 월드시리즈를 조작한 울프심과 손잡음) 이렇게라도 해야 그녀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이지와 닉을 집으로 초대한 후 집에서 상주하고 있는 클립스프링어에게 연주를 부탁하는 장면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노래 가사인지 독백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는 분명하지, 그것만은 확실해.
부유한 자는 더 큰 부를 얻고,
가난한 자는 아이를 얻지.
그러는 동안에, 그러는 사이에.
<개츠비에 대한 안타까움>
그의 시계는 5년 전에 멈춰 있었다. 그가 진정 사랑한 데이지는 5년 전의 데이지였다. 그런데 사실 5년 전의 시작도 솔직하지 못했다. 게걸스럽고 파렴치하게 자기가 얻을 수 있는 것을 구했으며 거짓 구실로 그녀를 차지했다. 이때 만약 솔직했다면 데이지를 만날 수 있었을까? 데이지는 생각보다 속물성이 컸던 여자이다. 어찌 됐건 데이지도 거짓된 개츠비를 사랑했고 결혼 전날까지 그를 떠올렸다. 데이지는 변했다. 톰과 결혼했으며 아이도 생겼다. 무엇보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은 건 딱 하나.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이었다. 개츠비가 원한 건 데이지가 톰을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5년 전 데이지를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생각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할 수 없었고, 개츠비의 과거와 집착을 목도하며 혼란을 겪다가 결국 자신의 잘못을 뒤집어쓴 개츠비를 뒤로하고 톰과 떠난다. 그리고 개츠비는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다 총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개츠비는 과거의 데이지가 아니라 지금의 데이지를 사랑할 순 없었을까?
그는 분명 예전의 따스한 세상을 잃어버렸고, 하나의 꿈을 너무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데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렀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녹색 불빛을 믿었다. 그것은 교묘히 개츠비를 피해 다녔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으면 될 뿐이었다.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때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 올바르지 않았더라도 사랑만큼은 진심이었고 끝까지 지키려 했다. 사랑은 1920년대나 지금이나 절대적인 명제 아닌가.
작가 피츠제럴드의 젤다에 대한 사랑이 개츠비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둘의 일화는 꼭 찾아서 읽어 보길 바란다. (그냥 '피츠제럴드=개츠비') 작가는 젤다에 대한 사랑을 개츠비에 녹여 정당화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위해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갔다. 그들의 실제 삶과 개츠비의 삶을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큰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은 결함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이제 나는 이것이 모두 서부의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 모두가 서부 사람들이었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동부 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미묘한 결함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 더 나아가 현 사회에도 대입 가능한 속물성, 위선, 거짓, 비윤리성 등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다. 개츠비를 위대하게 만든 사랑은 덤이다.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다 적고 싶지만 더욱 길어질 거 같아 생략한다;;;
끝으로 개츠비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닉의 독백을 전하며 마친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먼 길을 왔고, 이제 그 꿈은 그의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그것이 이미 그의 뒤에 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책 이야기 > 소설과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랜드(천선란) (48) | 2022.09.19 |
---|---|
천 개의 파랑(천선란) (26) | 2022.08.24 |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20) | 2022.01.18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매트 헤이그) (14) | 2022.01.04 |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16) | 2021.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