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The Old Man and the Sea(Ernest Hemingway)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년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남.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 적십자사의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으나 큰 부상을 입고 귀국. 1921년 <토론토 스타>지의 해외특파원으로 파리로 가게 되어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저자)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과 만남. 1937년 스페인 내란에 '북아메리카 신문 연맹' 특파원으로 종군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 1954년 9월 「LIFE」지에 발표한 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노인과 바다>는 이틀 만에 5백만 부 이상이 팔림. (퓰리처상 수상). 이후 1954년 현대문학의 스타일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 1961년 신경 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함.
이 책의 제목과 저자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읽어 보지는 않았더라도 들어는 보았음직한, 어렸을 때 필독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갔던 그 작품. 그런데 무슨 내용이었지. 노인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낚시하는 이야기였나. 아주 어렸을 때, 읽기를 강요 받아 접했지만 전혀 감흥이 없었던 그 책을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 다시 꺼내 읽었다. (실은 다시 사서 읽었다) 초등학교 때는 삼국지와 추리 소설에 푹 빠져 있었으니 이런 류의 책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노인과 바다>는 역시나..뭐지. 왜 처음 읽는 거 같지.....?
산티아고(노인)와 마놀린(소년)의 브로맨스(bromance), 노인과 바다, 이틀 낮밤을 꼬박 싸운 끝에 잡은 길이 5.5미터, 무게 700킬로그램가량 되는 청새치와의 사투, 돌아오는 길에 상어들과의 한바탕 싸움, 돛대를 땅에 내려놓고 일어선 후 다섯 번이나 주저앉아 쉬면서 결국 오두막에 도착하는 그 여정을 감정의 과잉이나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표현한다.
산티아고(노인)와 마놀린(소년)의 브로맨스(bromance)
노인은 소년이 다섯 살 무렵부터 같이 배를 타고 나가며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과정에서 노인과 소년은 서로에게 믿음이 생겼고, 소년은 노인을 최고의 어부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최고의 어부는 단연 할아버지시죠."
"아냐. 나보다 훌륭한 어부들을 난 많이 알고 있다."
"케 바. 소년은 말했다.
"물론 유능한 어부들이 많을 테고 그중엔 훌륭한 어부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최고는 할아버지뿐이에요."
84일 동안 바다에 나가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최고 기록은 87일). 노인을 놀리는 어부들도, 가슴 아파하는 나이 든 어부들도 있었다. 그만 둘 법한데도 끊임없이 바다로 나갈 것을 이야기하고 85는 행운의 숫자라며 소년에게 복권을 사기를 권한다. 이후 노인은 소년이 챙겨 준 정어리 몇 마리와 미끼 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홀로 배를 타고 떠난다.
바다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노인은 소년을 떠올리게 되고, 소년은 힘들게 돌아온 노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께 배울 게 많으니 어서 빨리 나으셔야 해요. 그래서 저한테 모든 걸 다 가르쳐주셔야 해요. 대체 얼마나 고생하신 거에요?"
노인과 바다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다. 바다를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에 반해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며 찌 대신 부표를 낚싯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자들은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el mar)'로 부르며 경쟁자나 투쟁 장소, 심지어 적처럼 여기며 말한다.
호의를 베풀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 어쩔 수 없이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하는 존재. 이는 바다임과 동시에 좁게 보면 소설을 전개하는 주인공, 노인, 산티아고 그 자체, 넓게 보면 인생인 셈이다.
"물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난 널 사랑하고 또 무척 존경한단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기 전에 널 죽이고 말겠다."
바다를 인생 그 자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때 인생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곳곳에 이런 인간적인(?) 면도 보인다.
예전에 카사블랑카의 한 술집에서 몸집이 아주 큰 흑인과 팔씨름했던 일을 떠올렸다.
이 대결은 일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이 돼서야 결국 끝났다. 이러한 점을 보면 노인의 젊은 시절과 평소 생활 태도를 지레짐작할 수 있다. 팔씨름을 꼬박 하루 동안 했던 사람이다. 청새치와의 사투가 이해된다.
정리하며
"이게 다 꿈이라면, 그래서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아예 없었던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애당초 너를 낚은 게 잘못이었어."
"이렇게 멀리까지 나오질 말았어야 했다, 물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나오질 말았어야 했어.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물고기를 낚기 위한 목표로 바다를 나왔다. 결국 목표를 이루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건 표면적인 것일 뿐 난 결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과 너무 닮지 않았는가? 인생에 있어 무엇인가를 목표를 할 때 무수히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물이 부족할 수도 있고, 소금이 없을 수도 있고, 청새치처럼 잡힐 듯 잡힐 듯 쉽게 잡히지 않을 수도 있고, 다 잡은 청새치에게 상어들이 덤벼들 수도 있다.
그럼 마지막으로 생각해보자. 큰 청새치를 잡은 것에 의미를 둘 것인가, 상어들이 덤벼들어 잡은 청새치가 온전하게 남지 않은 것에 의미를 둘 것인가? 마놀린의 대답으로 대신한다.
"난 놈들한테 졌단다, 마놀린." 노인은 말했다. "놈들한테 정말 지고 말았어."
"그놈한테는 지지 않았잖아요. 잡아온 물고기한테는 말이에요."
다시 한번 예전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를 꺼내 읽어 보길 권한다. 처음이라면 읽어 보고 나이가 흘러 다시 읽어 보길 권한다. 와닿는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교류했다고 하니 오랜만에 <위대한 개츠비>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책 이야기 > 소설과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 개의 파랑(천선란) (26) | 2022.08.24 |
---|---|
위대한 개츠비(피츠제럴드) (30) | 2022.01.25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매트 헤이그) (14) | 2022.01.04 |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16) | 2021.12.15 |
달러구트 꿈백화점(이미예) (0) | 2021.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