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천선란)
천 개의 파랑(천선란)
처음 이 책을 접한 건 지인의 추천 때문이었다. 6개월 전이었나. 온라인을 통해 수개월 동안 북콘서트를 진행하던 지인이 이 책을 선정하였고, 저자인 천선란 작가님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찾아 읽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오랜만에 떨림의 진동을 느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콜리가 진동에 대해 종종 언급한다) 그리고 소설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그 진동을 더 자주 겪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요즘 들어 왜 이렇게 눈물이 헤픈지 모르겠다 ^^;
천선란 작가
: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꾸시는 분. 소설을 쓰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천천히 걷는 연습 중이신 작가분은 2019년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 과학 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하셨다. 엄청 젊으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하시는지...작가 분들은 참 대단하다. 얼마 전 YES24에서 실시한 온라인 투표(2022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큰 틀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투데이)와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콜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둘 다 인간은 아니나 우리는 그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며 바라보게 된다. (마치 아무도 찾지 않아 자의적, 타의적 은퇴를 앞둔 노가수와 노매니저의 관계처럼) 여기에 화재로 인해 남편을 잃게 된 보경, 7세부터 수족마비 증상을 겪게 된 첫째 딸 은혜, 소프트웨어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둘째 딸 연재가 투데이와 콜리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사회적인 메시지와 가슴 떨림을 느끼게 해주는 문장들은 생각해 볼 여지를 많이 준다.
왜 말을 타고 달리는 경기를 열게 되었나요?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그럼 인간이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의 질문 -
▶ 인간이 재미있는데 말이 달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싸움, 개싸움, 명견대회 등 동물을 이용한 볼거리, 스포츠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동물을 이용한 싸움은 평소에도 비판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차치하더라도 동물을 이용하여 올림픽 메달을 가리는 스포츠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의 질문에 떳떳하게 답변해 줄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 보통 그리움을 느낄 때는 현재가 좋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지금이 힘들어서, 지금이 괴로워서, 지금이 슬퍼서,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이다. 대게 이럴 경우에 '그때가 좋았지', '그때가 그리워',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와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맞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했으면 하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잠시나마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겠지.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나요? 인간에게는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이 있나요?
너무 아프면 뛰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이미 주로에 섰으니까 그걸로 됐어요.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요.
▶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 콜리의 말들은 되새김질하기에 충분하다. 하나로 표현할 수도 없는, 표현하기도 어려운 온갖 감정과 생각들로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에게는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해한다고 착각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할 때면 콜리가 위로해 준다. "그걸로 됐어요."라며 말이다.
콜리의 마지막 말로 마친다.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큰 울림을 준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